많은 도시여행다니며 건축에 관심 높아져

건축과 삶은 고민과 시행착오 거쳐 발전

정 태 종

경기분당제생병원 교정과장

여러분은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하고, 즐기는가? 많은 사람들은 평소에는 도시와 건축물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필자도 요즘에는 아이들 숙제나 아주 특별한 기회가 있지 않고서는 서울의 건축물을 찾아 가지 않는다. 경복궁이나 종묘를 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나 외국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 그 도시의 유명한 건축물에 가서 보고, 감탄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기념한다. 왜일까? 파리에간 사람치고 에펠 탑에 안 가본 사람 없고 런던에 가면 빅벤을, 뉴욕에 가면 타임 스퀘어를 가본다. 서울을 방문한 사람들은 어디를 갈까? 궁금해서 론니 플래닛 한국 편을 본적이 있었는데 소개된 곳들이 평소에 필자가 관심을 갖지 않은 곳이라서 낯설었다. 사람들이 새로운 도시에서 가는 곳이 주로 건축물인 것은 그 건축물 자체보다는 그 도시의 랜드마크나 모뉴멘트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많은 것들이 원래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도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이다. 왜 건축물이 그런 기능을 담당하게 된 것일까?
돌이켜보면 필자가 건축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 수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 시절 첫 해외여행으로 오사카를 갔을 때는 그 도시의 상징인 오사카 성이나 도톤보리 거리에 눈을 빼앗겼었다. 그 이후 기회가 되는 대로 혼자서 배낭 매고 인도, 프랑스가서 르 꼬르뷔지에 주택을 미국, 스페인가서 프랭크 게리의 해체주의 건축을, 일본, 독일가서 안도 다다오의 미니멀리즘 작품을,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아 직접 보는 것을 즐겼다. 그 이후 여행은 건축여행이 되었고 빈도가 잦아지면서는 일반 사람들이 찾지 않지만 건축적으로 완성도 높은 것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렘 쿨하스와 OMA의 헤이그 지하철역, MVRDV의 Wazoco공동주택, ONL의 고속도로 Sound Barrier, Enric Mirallesd의 스코틀랜드 의회, Morphosis의 Diamond Ranch High School 등. 필자에게 있어 도시는 건축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녀본 도시들 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도시들을 꼽는다면 이태리의 베니스, 포르투갈의 오포르투, 페루의 쿠스코라 할 수 있다. 이 도시들은 거대한 메트로 폴리탄인 서울과는 다른 스케일의 분위기와 낭만이 있다. 어릴 시절 70년대 서울의 도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데자뷰를 느꼈던 포르투갈의 오포르투, 카사 다 무지카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퍼진 도시 블록들, 알바로 시자로 대표되는 미니멀한 디자인들과 건축재료들. 필자는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고도 쿠스코는 고산지대라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코카테를 마시면서 돌아다녔던 곳인데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구릉지에 퍼져있는 자그마한 집들이 파노라마처럼 감싸 안고 있는 곳이다. 일몰에 기차가 바다에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는 도시, 곤도르와 산타루치아와 미로의 골목보다도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이 아름다운 눈물이 나도록 눈이 부신 도시가 베니스이다.
필자는 미국서 건축 공부하면서 기회가 되어 네덜란드에서 살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건축과 도시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유럽의 수많은 뛰어난 건축물들로 인해 주눅이 들어서 인가, 아니면 일상의 생활로 바쁘고 익숙해져서 인가, 예전보다 건축의 실무를 통해 건축에 대한 지식은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가슴에 느껴지는 설렘이 없어졌다. 일반인으로 관심을 갖고 바라볼 때의 건축은 필자를 흥분시키고 즐거움을 주었었는데 막상 건축을 진지하게 일로 하려고 하니 그 즐거움이 반감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필자한테 치과 계속하면서 건축을 취미로 하라고 한 것인가? 소위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찾아왔고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개인적인 작업들을 통해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건축은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그것을 점차 발전시켜 사고의 영역을 넓히고 형상화 해내는 과정이고 그것은 건축뿐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건축은 그런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는. 누구 말대로 ‘농약 같은 가시나’이고 ‘내 허락 없이 내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필자의 지식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건축과 도시를 디자인해서 필자가 했던 가슴앓이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아! 나는 그런 걸 해보고 싶단 말이지!”